(1) 제품, 시장, 실행력, 운, 그리고 자신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

2021-02-26 hit count image

[독중감] 더 히스토리 오브 더 퓨처의 "고치기를 좋아한 소년" & "위대한 카맥"을 읽으면서 얻은 제품, 시장, 실행력, 운, 그리고 자신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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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 포스트는 시리즈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에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팔머 럭키

오큘러스의 창업자이자 이 책에 주요 인물인 팔머 럭키는 어려서 부터 우리와는 다른 종족임을 보여준다. 실리콘벨리에서 성공한 여느 유명 창업가들과 같이 독보적인 천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팔머 럭키는 어려서부터 홈스쿨링을 하였고, 15살에 대학 과정을 시작한다. 보통 우리는 20살에 대학 과정을 시작함으로, 우리들보다 5년이나 빨리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집 앞 트레일러(안타깝게 차고가 아니다.)에서 생활하면서 그 당시 세상의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VR 헤드셋(가상 현실 - Virtual Reality)을 혼자 연구/개발하고, 결국 지금의 큰 성공을 이룬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 집 차고에서 큰 성공을 이루는 여느 실리콘벨리의 성공 스토리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팔머 럭키의 성공이 팔머 럭키의 천재성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존 카맥

팔머 럭키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인물이 존 카맥이다. 이 이름이 낯선 사람도 있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우리는 존 카맥이라는 이름보다는 둠, 퀘이크라는 게임의 이름이 더욱 친숙할 것 같다. 그렇다 그는 둠과 퀘이크의 리드 개발자이다.

존 카맥은 레이지라는 게임을 개발한 후, 가상 현실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E3 행사(세계 최대, 최고의 게임쇼)에서 둠3의 VR 버전을 소개함으로써 게임을 홍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VR 헤드셋은 너무 비쌌고, 시야각이 너무 좁아, 존 카맥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존 카맥은 자신이 만족할 만한 VR 헤드셋을 찾아 헤맸고, 팔머 럭키가 개발중인 VR 헤드셋을 알게되어 먼저 연락하게 된다. 이렇게 팔머 럭키와 존 카맥은 만나게 된다.

그리고 E3 행사에서 대박을 치면서 팔머 럭키의 성공 스토리가 시작된다. 존 카맥이 없었다면, 팔머 럭키의 성공 스토리는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팔머 럭키의 성공 스토리는 그의 나이는 19살에 시작되었다.

virtual reality

성공 이유

팔머 럭키는 그의 성공 스토리가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존 카맥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여기에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몇가지 적어 본다.

제품

팔머 럭키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여주지만, 그 당시 별로 인기가 없던 VR 헤드셋을 트레일러에서 혼자 연구/개발한다. 주변의 이웃들이 걱정을 할 정도로 트레일러에서 평범 이하에 삶을 살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당시, VR 헤드셋을 연구/개발하고 있던 사람은 팔머 럭키, 혼자만이 아니였다. 소니, 이매진 등 굵직한 대기업도 VR 헤드셋을 꾸준히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당시 다른 VR 헤드셋의 시야각이 40도 였지만, 팔머 럭키의 프로토타입은 120도와 270도였다. 또한 가격도 저렴했다.

이처럼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 제품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그럴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정말 VR을 사랑했으며, VR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에서도 물론 같은 걸 만들 수 있었겠지만, 일/업무로써 VR을 접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헤드셋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처럼 그가 혼자서 트레일러에서 개발한 VR 헤드셋의 프로토타입은 기존의 제품들보다 성능이 뛰어났으며 가격 또한 저렴했다. 이렇게 뛰어난 제품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장

그 당시 VR 헤드셋은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군용 시뮬레이터에서 많이 활용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VR 헤드셋을 개발하던 기업들은 자금(눈 먼 나랏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며, 정부 프로젝트가 늘상 그렇듯 큰 혁신도, 큰 발전도 없었던 것이다.

팔머 럭키는 VR 헤드셋을 다른 용도로는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게임을 염두해 두었다. VR 헤드셋을 이용해서 게임을 하기 위해서 장시간 사용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가볍고 편하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PC를 구매하고 추가로 VR 헤드셋을 구매해야 하므로, 값이 저렴해야 했다. (추가 구매 하드웨어 이므로 값이 비싸면 구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용 VR 헤드셋을 개발하는 기업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은 이익과 결과를 추구하다보니, 그런 기업에서 연구/개발된 VR 헤드셋에는 큰 혁신이 없었으며, 기존에 개발하던 VR 헤드셋의 기능을 추가하거나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내놨으며, 그로인해 가격은 점점 비싸지기만 했다.

하지만, 팔머 럭키는 달랐다. 팔머 럭키는 현존하는 VR 헤드셋의 문제를 잘 정의하였고(가볍고 시야각이 넓어야하며, 저렴해야 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혼자서 연구/개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저렴하게 제품을 구상하였으며, 이 제품을 통해 큰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그는 넓은 시야각와 저렴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었다.

실행력

위에서도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VR 헤드셋에 관해서는 사실 누구라도 팔머 럭키와 동일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마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 주변을 봐도, “아 나도 저거 생각했었는데”, “내가 저거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하던건데”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에는 70억 인구가 있고, 그 사람들중 비슷한 패턴으로 생활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몇 없으며, 그 사람들이 대부분 성공하는 사람들에 속한다.

팔머 럭키도 역시 이와 같은 분류에 사람이다. 팔머 럭키도 다른 사람처럼 VR 헤드셋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 멈추지 않고,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VR 헤드셋을 제품을 모으고, 분해하고,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각을 실행하는 실행력을 가진 사람이다.

회사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 에피소드만을 봐도 그가 얼마나 실행력이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의 프로토타입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품화하려고 할 때, 그는 이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하려면 회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사 이름을 생각하는 꽤 까다롭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이름 대부분은 이미 사용중이었고, 직관적인 이름들은 이 기술과 관련된 과거의 불명예를 떠안을 위험이 있었다. (중략) 그는 80년대 도산한 가상 게임 회사들의 권리를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버추얼리티’사를 찾아냈다. 당시 럭키는 현대식 아케이드 게임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버추얼리티’라는 이름에 대한 권리를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캔자스의 올리브 가든이라는 식당에서 럭키는 권리 보유자를 만나 그러한 가능성이 있을지 논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15만 달러를 원했고, 이름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버추얼리티사가 이전에 만든 장비들로 가득한 창고까지 모두 사 가길 바랐다.

서비스 이름이나 회사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던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미 존재하면, 그냥 다른 이름을 생각하려고 한다.(나도 그렇다.) 하지만 팔머 럭키는 직접 소유자를 찾아가고 그 권리를 살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나는 그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몸을 직접 움직여 실행하는 실행력이 몸에 베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실행력이 그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virttal reality

자신을 알리다

팔머 럭키는 집앞 트레일러에서 혼자서 VR을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게임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존 카맥이 팔머 럭키가 엄청난 VR 헤드셋을 개발하고 있다고 알고 연락을 했을까?

팔머 럭키는 하드웨어 개조(해커와 게이머, 기술 애호가들 용어로 모딩(Modding)이라고 하는)에 대한 열정이 뛰었났으며, 복고 게임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이것이 그를 VR 세계로 인도하게 된다.

팔머 럭키는 하드웨어 개조를 취미로 가지고 있었으며, 충분한 실력이 쌓였을 때, 이런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모드 레트로(ModRetro)라는 커뮤니티를 공동으로 만들게 된다. 웹 포럼과 대화방 그리고 ‘배우고, 만들고, 고쳐라’라는 모토와 함께 모드레트로는 세상에서 가장 실력 좋고 똑똑하고 호기심 많은 개조꾼들을 끌어모으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생각/실력/경험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지속적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이 커뮤니티 활동이 없었다면, 존 카맥은 팔머 럭키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공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안다. 당신은 엄청 재능을 가진 뛰어난 존재이고, 당신이 없으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당신의 이름도, 연락할 방법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을 필요로하는 회사,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아직도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의 업적을 찾을 수 있고, 당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운(타이밍)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중에서 ‘이번엔 운이 좋아서 성공할 수 있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아이템이 있다고 하더라도 운이 없으면 실패하고 만다.

오큘러스의 성공 스토리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팔머 럭키가 존 카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존 카맥이 VR에 관심이 없었고, E3에서 VR 헤드셋을 이용한 게임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오큘러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머 럭키는 정말 운이 좋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팔러 럭키가 다른 제품보다 뛰어난 제품을 가지고 있었고,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자신을 충분히 알리고 있었고, VR에 빠져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존 카맥(운)을 만날 수 있었으며,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운은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다.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더 히스토리 오브 더 퓨처:오큘러스와 페이스북 그리고 가상현실을 휩쓴 혁명, 커넥팅

인사이트

  • 서비스/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시장이 원하는 서비스/제품이여야 한다.
  •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실행력과 자신을 알리기 위한 행동(커뮤니티 활동 등)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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